다윗에게 배우는 싸움의 기술(2)ㅣ양민철 목사ㅣ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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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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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게 배우는 싸움의 기술(2)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삼상 24:16~18)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싸움”이라는 키워드로 다윗의 삶을 살피고자 한다. 다윗의 싸움은 골리앗과의 싸움을 빼놓을 수 없다. 아주 짧은 시간에 매우 강렬한 영향력을 갖게 한 싸움이었다. 또 다른 싸움은 사울왕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매우 길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사울왕은 꽤 난해한 상대이었다.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속한 자이고 분명히 같은 편 같은 데 다윗을 공격하였다. 하는 짓으로 봐서는 분명히 동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적도 아니다. 아주 애매한 상대와 싸워야 했다. *우리 싸움의 대부분의 대상이 그러하다. 아주 애매한 상대와 싸우는 것이다. 이 싸움을 잘해야 하는 이유는..? 잘못 하면 같이 죽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의 싸움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마귀와 싸우는 것이다. 또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정체성을 지키면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다윗과 사울왕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가 있다. 나를 다윗으로 설정하고 상대를 사울왕으로 단정하는 것이다. 내가 다윗이기에 하나님은 무조건 내 편이고 나를 보호하는 분이시다. 또한 상대를 벌하는 분이시다. 이렇게 묵상한다면 아주 잘못 묵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묵상해야 하는가? 


우리는 다윗이 될 수도 있지만 사울왕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다윗이 되어 상대와 싸우는 싸움이 아니다. 내가 ‘다윗이 되느냐, 사울왕이 되느냐?’의 싸움이다. 우리 모두 사울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마귀가 이기는 것이다. 다윗과 사울왕으로 나눠질 수도 있다. 우리 모두 다윗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모두가 다윗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다윗이 될 수 있는가? 다윗에게 배우는 싸움의 기술 두 가지는..?


1. 승리의 목표로 ‘KO’가 아닌 ‘판정승’을 선택하라!


사울왕은 다윗의 목숨을 거두려 했다. 자기 앞에서 수금을 탔을 때에 창을 던졌다. 민첩한 다윗은 사악한 왕의 창을 피했다. 만일 피하지 못했다면 다윗은 죽었을 것이다. 사울왕은 다윗을 철저하게 적으로 간주하고 죽이려고 했다. 그가 내걸은 승리의 목표는 ‘다윗을 보기 좋게 KO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엄청난 군사를 동원하였다. 고작 다윗과 신복 몇 사람을 죽이기 위해 군사 3천명을 동원하였다. 그는 다윗을 적으로 몰아 세웠고 그를 죽이기 위해 엄청난 힘(에너지)을 사용하였다. 그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서, 모든 힘을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삶의 모든 에너지를  긁어모아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우리는 삶의 소중한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최상의 기회에서 그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 


사울은 ‘왕’이라는 힘을 가졌을 때 죽이는 일을 하였다.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않는 파괴적인 일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하였다. 반면에 에스더는 ‘왕비’라는 영향력을 가졌을 때에 ‘민족을 구하는 일’에 사용하였다. 내게 최대의 힘이 주어졌을 때에 나의 결정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지켜보신다.


다윗은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만났다. 엔게디 광야, 들염소 바위 근처, 양의 우리 곁에 있는 깊은 동굴에 숨었다. 그런데 사울왕이 용변을 보기 위해 군사 3천명을 물러 서게 하고 혼자 들어왔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삼상 24:4).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처단할 기회를 주셨다’고 다윗을 자극했다. 하지만 다윗은 대적을 처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쓰지 않았다. 


대신 사울왕의 옷자락을 잘랐다. 사울왕 죽이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기대하는 승리는 ‘사울왕을 KO 시켜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판정승을 거두는 일이었다. 하나님과 선한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옳았어’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주셔야 진정 승리한 것이다. 다윗은 그것이 진정한 승리 임을 알았다. 성경은 말한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7~9). 


다윗에게 배우는 싸움의 기술은, 판정승을 승리의 목표로 삼으라는 것. 한 가지 더 배워야 할 싸움의 기술이 있다. 그것은..?


2. 복수의 방법으로 ‘가장 멋지게 사는 삶’을 보여주어라!


다윗은 억울한 사람이다. 조금 억울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많이 억울한 사람이다. 대개 억울한 사람은 과격하고 극단적인 보복의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사울을 처단할 기회를 만났다. 그때 칼을 거두었다. 그의 사람들이 그를 자극했지만 칼을 쓰지 않았다. 사울을 베는 대신에 그의 옷자락을 베었다. 


사울의 군대가 떠나는 뒷편에서 다윗이 소리쳤다. 먼저 정중하게 절을 하고서 이렇게 말했다.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삼상 24:9~12). 


그는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했다. 왕을 해치려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간신들의 이간에 넘어가지 말 것을 호소하였다. 또한 그의 손으로 복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하나님에게 맡긴다고 말했다. 그는 쫓기는 도망자였다. 소수의 리더인 다윗이 3천명 군사를 거느린 일국의 왕에게 했던 말이다. 이 말을 듣고서 사울이 무너졌다.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라고 말한 후에 크게 울었다(삼상 24:16). 그는 이어서 말했다. “17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삼상 24:17~21).


사울이 바른 말을 했다. 다윗이 자신을 ‘선대하였다’고 고마워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축복했다.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또한 ‘자기 후손을 보존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런 말을 눈물로 하였다. 진정성이 있는 말이었다. 그의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착한 사람인가?


이런 고백 후에 사울은 다시 다윗을 추격하며 공격하였다. 그는 여전히 칼을 사용하였다. 다윗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윗으로 부터 왕권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왕권을 지키려는 그의 방법은 ‘칼’이었다. 상대를 찌르고 아프게 하고 죽이는 칼이었다. 


묻는다. 다윗을 축복하며 예언했던 사울과 여전히 칼을 사용했던 사울 중에 어떤 사울이 진짜 사울인가? 모든 사람에게는 착한 본심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착한 것은 아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근거는 깊이 억눌려 있는 착한 본심이 아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착한 본심이 아니다. 그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자기를 지키려는 방법, 무엇을 얻으려는 방법이 악하면 그는 악한 사람이다. 착한 말을 했지만 ‘칼’을 사용했던 사울은 결코 착한 사람일 수 없다. 반면에 다윗은 ‘칼’이 있으나 칼을 사용하는 대신 ‘하나님의 성품’을 사용했다. 분명히 사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시편을 보면 그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방법은 칼 대신 눈물의 기도였다. 이런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 


*우리에게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또한 필요한 것이 있다. 어떤 방법으로 지키는가? 어떤 방법으로 얻고자 하는가?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내 자신이다. 사울이 되지 말고 다윗이 되기 바란다.


이제 두 사람의 싸움을 정리해보자. 사울은 칼로 싸웠고 다윗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칼을 다스렸다. 누가 이겼는가? 결국 다윗이 이겼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속도로 덩치를 이겼던 것처럼, 사울과의 싸움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이 칼을 이겼다. 


다윗은 쫓겼지만 비굴하지 않고 당당했다. 왕 앞에서 당당했다. 3천명 군사 앞에서 당당했다. 이런 당당함이 타락한 왕에게 더 큰 두려움과 부러움을 갖게 했을 것이다. 이런 당당함이 왕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울은 칼을 써도 이기지 못했지만 다윗은 칼을 쓰지 않고도 이겼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도 이겼다. 사울과의 약속대로 그 후손을 끊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주셔야 비로소 이기는 것이다.  


다윗은 제대로 복수했다. 아주 멋지게 사는 모습으로 복수했다. 성경은 말한다.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 


어떤 복수의 방법을 선택하였는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당당하게 사는 삶, 멋지고 폼나게 사는 삶’을 선택하라. 이런 방법으로 상대를 약오르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사는 삶, 멋지게 사는 삶이 시기가 나야 한다. 이런 복수는 모두에게 복이 된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만든다. 결국 이런 복수는 모두 이기게 만든다. 이런 복수는 우리 가운데 이간질하고 서로 다투게 하는 교활한 마귀를 꺾는다.


여호와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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