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칼럼] "율법은 공평한 삶을 명령한다" / 양민철 목사 / 2019.10.6

관리자
20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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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공평한 삶'을 명령한다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35~37).


이상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에 이끌려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당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명하셨다. 출애굽기 20장에 십계명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기 20장부터 레위기까지 이어진다. 이것을 '율법'이라고 부른다. 율법의 핵심이 십계명에 잘 나타나 있다. 613가지 율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1~4계명), 이웃을 사랑하라(5~10계명). 예수님께서 율법을 두 계명으로 요약하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말씀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앞에 언급한 말씀(레 19:35~37)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명하신 것이다. 귀담아 듣고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


본문을 자세히 보자. 재판할 때나 상업을 할 때에 사람 봐가며 속이지 말고 누굴 대하든지 공평하게 하라는 말씀이다. '선택적 정의'는 공평하지 않다. 검찰이 저항세력을 제거하는 수단이다. 이런 검찰의 무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토요일 촛불집회 후, 조선일보는 1면 기사 헤드라인을 <집권세력이 '거리 정치’로 法治 위협>이라고 장식했다. 국민들이 촛불드는 행동에 대해 '법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실상 법치를 위협하는 것은 검찰이 아니던가? 정의를 행한답시고 사람 골라서 탈탈털고 자기 사람은 증거가 충분함에도 대충 넘어가는 뻔뻔함이 법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성접대 받는 자리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동영상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제대로 벌하지 않는 현실이다. 제 식구는 감싼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서 성경 앞에 제대로 설 수 있는가?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롭지 못한 검찰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회개혁적 시민행동이며, 또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적 행동이기도 하다.


나는 ‘거룩’을 종교적 행위에서 찾기보다 일상적 삶에서 찾는다. 일상적 삶에서 거룩은 세상과 분리하여 ‘따로’ 사는 것(종교적 삶)이 아니다. 세상 일에 눈감고 귀막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살면서 ‘다르게’ 사는 것이다. 세상 한 복판에서 살면서 영원한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위해 따로 모여 기도와 묵상을 나누는 것이다. 이런 삶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끼리 따로 모여 무엇을 추구한단 말인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결코 세상을 외면하거나 구제불능 집단으로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저 영원한 나라를 믿기에 그 나라의 가치를 따라 이 땅에서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은 저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교적 삶이다. 

 

부디 공평한 세상이 오기를 희망한다.



양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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