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칼럼] "역사산책" / 양민철 목사 / 2019.10.20

관리자
201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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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지난 월요일(14일) 화창한 가을날씨에 <역사산책>을 다녀왔다. 평소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광장에서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는 형님이 ‘역사산책’이란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그 자취를 따라가는 역사기행이다. 총 4회 분량 2년간 봄 가을에 진행하였다. 2회 때부터는 그 형님이 속한 ‘고난함께’와 내가 속한 ‘교회2.0목회자운동’이 공동주최하였다. 오랜 세월 서울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유서 깊다는 생각은 못했다. 역사학자 홍승표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비로소 제대로 서울을 발견하였다.



 조선시대 종로는 궁궐로 오가는 길이었다. 조종신료와 양반귀족이 가마를 타고 지나는 길에 서민들은 엎드려 절해야 했다. 몇 걸음 지나면 또 가마가 온다. 서민들은 걷다가 엎드리는 일을 반복하였다. 하여 가마를 피해 종로 옆 골목으로 다녔다. 가마를 피해 다녔던 길을 ‘피맛길’이라 불렀다. 길 좌우에 상점들이 생기면서 ‘피맛골’이라 불려졌다. 종로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진 피맛길은 중간에 잘린다. 서울YMCA 건물이 길을 막았다. 홍 박사는 YMCA건물 건축을 “서민들에게 더 이상 양반을 피해 다니지 말고 당당하게 종로로 다니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해석하였다. 



북촌 한옥마을은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다. 궁에서 가까운 곳, 귀족과 양반들이 저택을 지어 살던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서민들을 위한 한옥타운이 들어섰다. 일본 사람들이 노른자리 땅인 북촌을 탐낼 때 부동산업자 정세권 씨가 발빠르게 북촌 땅들을 매입하여 서민들을 위한 한옥타운을 건설하였다. 일본인들은 한옥에 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만일 정세권이란 사람이 없었다면 북촌에 후암동처럼 적산가옥(일본식 가옥)이 즐비했을 것이다. ‘애국자’라는 직업은 따로 없다. 어떤 일을 하든지 조국을 위해 일한다면 그가 애국자다. 성직을 따로 찾지말자. 어떤 자리에 있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다면 그가 성직자다. 


개인적으로 참 유익했다. 많이 배웠다. 역사현장에서 느끼는 도전이 적지 않았다. 기회를 만들어 희망찬 가족들과 함께 서울 역사산책을 안내하고 싶다. 내년 봄에 희망찬교회 주최로 역사산책을 기획하려고 한다. 함께 역사산책에 동행할 길동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양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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