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철의 글] "요즘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ㅣ2020.8.2

관리자
2020-08-01
조회수 21

요즘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어제 악천 후 가운데 삼성역 부근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20대에 만난 친구가 장남을 장가 보낸다 하여 식장을 향해 달려가려는데 엄청난 비가 퍼부었다. 교회당 주차장에 세워 둔 차량에 올라타기 전에 잘 차려입은 양복이 젖었다. 결혼하기에 정말 안 좋은 날이었다. 비가 오니 당연히 길이 엄청 막혔다. 다행히 잘 도착하여 예식에 참석한 후 교단 지방회 동역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으레 피로연회장에 양가 어른들과 신랑 신부가 인사를 왔다. 친구는 몇 사람에게 인사한 후 우리 쪽에 아예 눌러 앉았다. 거동이 불편하여 더 걷기 어려운 상태이기도 하였거니와 그 친구의 성격이 격식을 차리기 보다 자연스럽고 편하게 사는 스타일이다 보니..


얼마 전 친구는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위해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과정에서 희귀병이 발견되었다. 친구 말에 의하면 폐동맥 고혈압은 천 명 중 한 명 정도 발생하는 질환이다. 간경화보다 치명적인 병이라고 한다. 친구의 감사는 다행히 발견했다는 것이다. 간 이식 수술이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하고 위험에 처할 뻔 했다. 큰 수술을 고통스럽지만 다행히 더 위험한 질병을 발견하게 되어 감사하는 것이다. 


친구의 말을 들으며 신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병든 사람이 감사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5년째 투병하다가 겨우 간 이식 수술한 후에 더 위험한 질병과 투병하고 있으면서 그리 감사한지..


친구에게 좀더 회복되면 일명 사조직(침례교 목회자 4인방을 일컫는 별칭)이 뭉쳐 동쪽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거의 집과 병원에 갇혀 있다 시피 하루하루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보내는 터라 말만 들어도 신이 나는 것 같다. 


20대 만나 겁 없이 30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 살짝 건강이 걱정이 된다. 친구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옛 말이 이런 경험 속에서 나온 것이겠지. 혈기방장하여 천하를 삼킬 것 같은 담대함으로 살았던 세월이 있었다면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걸어야 할 때도 있는 법. 지금이 그 때인 것 같다. 


희망찬 가족들과 함께한 세월이 꽤나 길다. 빛바랜 교복처럼 사랑의 묵은 때가 묻어있다. 세월만큼 추억도 많다. 앞을 내다 보는 길이보다 뒤안길의 길이가 점점 더 길어지는 것이 나이 든 증거이다. 아름답게 물들어 가자. 하루하루 따뜻한 걸음으로. 



2020.8.2 주보 3면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