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키워드 / 선교

관리자
20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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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초기 우리교회는 선교에 남다른 열정을 발휘하였습니다. 비록 월세 사는 교회였지만 중국과 말레시아에 세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처음 선교사를 파송했을 당시 우리교회만으로는 그 힘이 부족하여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해서 선교의 의지가 분명한 여러 작은 교회들과 연대하여 선교회를 설립하였고 공동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한 교회가 독자적인 힘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 개 이상의 교회들이 힘을 모르면 그 일에 부담은 줄어들고 즐거움은 확대됩니다. 



어떤 선교사가 한 교회의 재정적 지원으로 파송받아 사역을 한다면, 교회의 형편이 어려워 지원을 줄어거나 전액 삭감할 경우 선교지에서 철수해야 하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교회들이 힘을 합하여 파송한 선교사는 그런 위기의 확률이 적습니다. 또한 한 교회의 독자적인 힘이 아닌 다수 교회들의 연대로 파송받은 선교사의 경우, 교회에 매이지 않고 선교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함으로 선교역량을 안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가 선교사를 지배하지 않기 때문에 선교사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사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교회의 선교 경험입니다. 



제가 여러 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만들었던 선교단체는 선교사 후원회 성격을 가진 친교 모임이었습니다. 형식보다 교제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는 선교사를 돕는 목적으로 모여 서로 목회를 나누며 선교에 대해 배우는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선교회에 속한 교회의 목회자들이 돌아가며 회장직을 수행하였습니다. 회장직을 맡은 목회자들은 교회적 참여를 더 많이 이끌어냈습니다. 1999년에 설립된 선교단체에서 저는 회장을 맡았던 적이 없습니다. 초기에는 ‘간사’라는 직함으로 선교회를 운영하였고 나중에는 그런 직함 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선교단체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선교’에 초점을 맞추다면 교회의 규모에 관계없이 선교는 가능합니다. 

 


해외선교만큼 국내선교는 중요합니다. 우리교회는 전방에 위치한 군부대를 5년간 매달 위문 차 방문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청년들로 기본 구성을 한 찬양단(SOJ_Sounds of Jesus)과 함께 방문하여 매달 1회 수요저녁예배를 장병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찬양단의 기본 구성은 우리교회 멤버들이었으나 찬양단의 구성을 다 갖추지 못하여, 그들의 인적 네트워크 안에 있는 외부 멤버들이 충원되곤 하였습니다. 심지어 차량과 악기가 없어 빌려서 활동했었습니다. 군부대 찬양사역은 우리교회 역량만을 가지고선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5년간 꾸준히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으로 ‘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한 교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나 둘 포기한다면 나중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포기하는 것은 합당한 믿음이 아닙니다. 잘게 잘게 쪼개어진 각 지역교회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안에 존재합니다. 교회와 교회가 연합하여 함께 사역하고 봉사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르는 일이며 작은 교회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지혜입니다.



이 사역은 핵심 리더가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체 해산하였습니다. 5년간의 전방부대 위문 봉사는 참여했던 멤버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특벽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가끔 위문 부대 장병이었던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한 달만 참으면 희망찬교회가 오기에 힘겨운 군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였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이들은 매달 방문하여 봉사하는 일에 회의적인 발언을 하여 당시 군부대 위문사역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이런 논조였습니다. 장병들이 예배에 나오는 것은 사람을 만나고 위문품을 전달받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에는 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자신들의 군생활 경험에 바탕을 둔 일리 있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때마다 제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피흘려 죽으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핏값만큼 비싼 영혼들이다. 그들이 위문품 한 봉지 받았다고 회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갔을 뿐이다. 우리의 노력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수많은 징검다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수고라고 평가한다.”

 


농부는 비옥한 땅을 만들기 위해 잡초와 돌맹이를 걷어내고 거름을 줍니다. 씨를 뿌리고 잘 가꿉니다. 추수는 한 순간이지만 그 한 순간의 기쁨을 위해 많은 순간 땀을 흘러야 합니다. 한 영혼의 결심과 헌신은 한 교회와 한 사람의 수고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최종적인 안내자가 내가 되고 우리교회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선교적 노력은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기억될 만한 헌신입니다. 한국교회 가운데 경쟁하는 풍토를 없애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 생태계 전체가 건강해야 우리교회도 살 수 있습니다. 선교적 수고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구성원의 수는 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로 전체 하나님의 나라가 잘 되는 것이라면 당장 눈 앞에 유익이 없을지라도 우리 자신의 수고를 기뻐하며 감사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진정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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